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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굽혀라 ,fangiox

‘노력’만큼 이미지 세탁을 잘 한 단어도 없을 거다. 노력이란 말은 실상 얼마나 두루뭉술한가? 알고 보면 노력은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다. 반기 들 여지를 안 준다. 노력에 대항하면 의지 없는 사람이 되고, 노력에 충실하면 ‘조금만 더’를 외쳐댄다. 살면서 노력에게 배신당한 적 한 두 번 아닐 텐데 아직 거기 책잡혀 살 이유 없잖은가. 아마, 이 말 때문이려나?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내기 위해 대입해야 하는 공식이 몇 개 있는데, 노력은 그 풀이 과정 중 하나일 따름이다. 답이 아니다. 열심히 하는 건 필요하지만 열심히만 해서는 제자리걸음인 이유다. 사실 [노력=결실] 이란 공식은 현상유지에 더 적합하다. 노력이라도 안 하면 가진 것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제, 누군가 우리에게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되겠지?’를 기어이 또 묻는다면, 단호하게 답해주자. 모두가 ‘네’라고 할 때 무어라 말하랬다고?

아니! 더보기

안창용
끈질기게 시원한, SUMMER

바다를 본다. 푸른빛이 돌기도 하고 검은빛이 돌기도 하는 바다를 본다. 바다는 대단히 거대하고 정교한 질서를 품고 있다. 끝이 보이지도 않는 횡대의 무리가 한줄씩, 한줄씩 모래를 딛고 뭍으로 올라온다. 진시황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 상상했던 병마용갱에 영혼이 깃들면 이런 모습일까. 그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인지 혹은 힘있는 창질을 하는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보고 있는 바다엔 유일무이한 질서가 잠들어 있다.

파도를 본다. 점점 커지나 싶더니 이내 꺾이곤, 내 발치에 닿을 듯 말 듯 미끄러져 오는 파도를 본다. 밀려오는 파도엔 비교할 바 없는 커다란 혼돈이 내재되어 있다. 줄을 서서 차례차례 밀려오는 파도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중간에 줄이 섞이기도 하고, 잘 이어져 있던 줄이 끊겨 있기도 하고, 모래와 맞닿아 있는 곳엔 밀려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는 파도가 뒤에서부터 한 줄씩 들어오는 파도와 부딪히고 엉겨 불규칙한 해안선을 만든다.

바다에서 일하던 집에서 태어나, 바다를 끼고 살았고, 취미가 낚시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참 많은 바다를 보았다. 띄는 빛깔도, 맡는 냄새도, 해안선의 길이도, 앞의 모래와 바위도, 온도도, 제각각 다른 게 바다이지만 파도 없는 바다는 없었다.

파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스러지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모든 파도는 필연적으로 스러진다. 학교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던, 파고와 수심의 비가 3:4를 넘어가 무너지고 으스러지는 운동과는 다르다. 파도를 두어 시간 바라보면 좀 더 필사적이고, 좀 더 비장하게 무너지려 애쓰는 파도를 볼 수 있다. 왜 있는 힘껏 무너지려는 걸까. 어떻게 쌓아온 탑인데. 더보기

이명우
PANTS
SHOES
될 때까지의 정의

NOT YET

잃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지켜온 것들을 어느 하나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다. 먼지 쌓인 물건들을 집 안에 방치하고, 묵은 감정들을 내면에 간직한다. 묵어서 나는 쉰내에 모른 채 반응하고 태연하게 살아간다. 그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행동의 수수께끼다. 방 청소와 환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우리는, 정작 내가 조성한 생활 주변의 묵은 것들은 치우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줄을 맞춰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맞춰 가는 줄은 어디로 향하나. 무엇도 잃지 못하고 어깨 위에, 발 밑에 질질 끌고 가는 그 모든 것들, 옆 사람과 줄을 서 있으면 그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산맥이 된다. 우리는 해안가로 간다. 우리는 줄을 맞추어 해안가로 가다가, 우리가 짊어진 짐의 높이와 지탱하는 다리 길이의 비가 3:4를 조금 넘어가는 순간 스러지겠지. 파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스러지려 살아가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누구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스러지기 위해 살아가는 모순.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책의 후작을 청탁한다면, “스러지는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쓰고 싶다. 버티는 삶의 목적은 스러지는 삶이라 생각하기에.
이명우